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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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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마주친 전도자는 성경을 믿어야 하며, '예수를 믿고 지옥을 면하여 천국에 가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성경 말씀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는 입을 열 때마다 "주의 말씀"이 새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황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도자가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 외에 다른 구원받을 이름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사망 후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 하셨습니다." 라고 할 때 그는 기존 전승의 양식을 변형하여 어록 자료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전자는 사도행전 4:12에 나타난 베드로의 설교가 예수의 것으로 선포된 것이고, 후자는 히브리서 9:27의 변형이다. 이것은 정경 안의 다른 구절들-설교문과 서신-이 "주의 말씀"으로 변형되어 선포된 사례이다.


그런데, 만약 그 전도자가 "주님께서 '오늘 죽어서 천국에 갈 자신이 있느냐?' 물으십니다." 라고 외쳤다면 그는 정경 이후의 전승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주의 말씀"을 창작한 것이다. 구원의 확신에 대한 질문은 근대적 기독교의 산물이다. 예수와 사도들이 이와 같은 질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가 완전히 새로운 전승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가 "주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 나름의 검열을 거치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교리와 분위기가 검열의 잣대로 작동한다. 문제는 "공동체"의 형태와 사상이 매우 다양하다는 데에 있다. 오순절주의자와 칼빈주의자 사이에는 동의하는 항목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설교자나 전도자들이 방언과 예정에 대한 "주의 말씀"을 전한다면 그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현대 교회는 좀 나은 편이다. 우리는 초기 공의회의 논쟁들을 알고 있고, 근본주의 운동과 에큐메니컬 운동 등이 가져온 대화의 결과로 동의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인지를 대략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다.


1세기 교회에서 "주의 말씀"이 될 수 있는 것들의 항목은 우리 시대에 비해 더 다양했다. 어떤 이들은 시편이 구절들을 가져와 예수의 입에 넣었고, 어떤 이들은 영지주의(?)적 '구세주'에게나 어울릴법한 말을 "주의 말씀"으로 선포했다. 기독교 공동체들이 30년 정도(예수 사후에서 최초의 복음서가 기록되기까지)만 독자적으로 발전했다고 가정해도 문화적 차이에 따른 "주의 말씀"의 변이는 매우 다양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

1. 성찬 제정사는 예배를 위하여, 만찬 예식의 신학적 의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었을 수 있다.

2. 수난이야기는 주로 공동체 내부를 위해, 고난 받는 공동체를 위로하고 정당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었을 수 있다.

3. 속담과 잠언들이 공동체 치리를 위해 "주의 말씀"으로 선포되었을수 있다.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종교사학파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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