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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클럽

조회 수 8237 추천 수 0 댓글 19

우리는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알흠다운 신학 전통을 가지고 있지요.

서로서로, 한쪽에선 무식한 근본주의자들, 한쪽에선 치졸한 자유주의자들... 

참 잘 하는 짓들입니다. 


송인규 교수의 글도, 결국 정중할 것처럼 나가다가 결국 한마디 하고 마는군요.

개혁주의자분들은 이 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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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은 유신진화론을 수용할 수 있는가?

 

< 송인규 교수, 합신 조직신학 >

 

 

“유신진화론이 전 세대에 비해 훨씬 더 많이 그리스도인의 주목을 끌고 각광을 받는다고 해서 결코 동조할 수 없다.”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은 대체로 보아 “인간을 포함한 생물계의 형성과 발전에 있어서 생물학적 진화론을 하나님의 섭리 방식으로 채택하는 신학 이론”이다. 그런데 근자에 유신진화론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일반 복음주의계에 편만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2005년의 한 통계 자료에 의하면 미국 오순절 계통의 대학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학교에 따라 적게는 12%에서 많게는 27%가 유신진화론을 받아들인다고 반응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상대성 이론 및 양자 역학의 득세 이후로 번지고 있는 신학과 자연 과학 사이의 밀월 관계, 포스트모던식 과학 철학의 유행, 이머징 처치 운동의 확산 등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무오한 진리와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의 가르침을 바른 신학의 골조로 삼고 있는 보수적 장로 교회의 지도자들은 유신진화론을 타당한 이론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두말할 나위 없이 “아니오!”이다. 그러나 “아니오!”라는 부정적 답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과연 우리가 무슨 근거에 의해 유신진화론을 반대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사항을 언급할 수 있겠으나, 필자는 크게 두 부류의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1. 성경적·신학적 근거에 의한 반대

 

유신진화론은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가 된다. 만일 유신진화론이 성경적 진리로 인정되려면 최소 세 가지 결론이 창세기 1, 2장으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

 

첫째, 창 1:21과 1:27에 등장하는 동사 ‘창조하다’(히브리어 ‘바라’)가 ‘자연 과정에 의한 발전’으로 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바라’는 자연적 과정에 의한 현상을 묘사하는 단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특히 창 1:1에서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함의한다.

 

또 비록 창 1:21, 27의 ‘바라’는 무에서의 창조가 아니고 기존 재료 - 들짐승과 새의 경우에는 ‘흙’(창 2:19)이, 수중 생물의 경우에는 ‘물’(창 1:20)이, 또 인간 신체의 경우에는 ‘흙’(창 2:7)이 -를 사용한 하나님의 역사를 묘사하지만, 어쨌든 이 역시 자연 과정에 의한 발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에 의한 창출 행위를 나타낸다. 이처럼 ‘바라’라는 용어가 유신진화론의 성립을 반대하게 만든다.

 

둘째, 유신진화론이 가능하려면 창세기 1장의 여러 곳(11, 12, 21, 24, 25절)에 등장하는 단어 ‘종류’(히브리어 ‘민’)가 오늘날 생물 분류학에서 거론되는 각종 명칭들 - ‘종’(種, species), ‘속’(屬, genus), ‘과’(科, family), ‘문’(門, phylum) 등 - 과 아무런 실질적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생물분류학에서는 모든 생물을 ‘계’(界, kingdom) → ‘문’(門, phylum) → ‘강’(綱, class) → ‘목’(目, order) → ‘과’(科, family) → ‘속’(屬, genus) → ‘종’(種, species)의 체계에 따라 분류한다. 가령 예를 들어 ‘사람’ 같으면, 동물계 → 척추동물문 → 포유류강 → 영장목 → 사람과 → 사람속 → 사람종으로 분류가 된다.]

구체적으로 각기 ‘종류’대로 창조된 생물체들 가운데 ‘동물’(창 1:25)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어떤 이는 이 ‘종류’가 ‘종’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그보다 더 상위 개념인 ‘속’이나 ‘과’ 또는 심지어 ‘문’까지도 가리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껏 양보하여 설사 이 ‘종류’가 ‘문’을 뜻한다고 해도 이로써 유신진화론의 입지가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유신진화론은 생물학적 진화를 액면 그대로 인정하는 고로 최초의 생명체로부터 인간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점진적이고 자연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의 ‘종류’를 생물학적 분류 가운데 아무리 높은 단계로 해석한다고 해도 이로써 유신진화론이 성립될 수는 없는 것이다.

 

셋째, 또 유신진화론이 성립되려면 창 2:7의 ‘흙’(히브리어 ‘아파르’)이 인간 직전의 하등 동물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흙’이 하등 동물이라는 해석은 성경의 여러 증거로 보아 가당치 않다.

 

우선 만일 유신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인간이 하등 동물로부터 진화된 것이라면, 이미 흙으로부터 짐승이 창조된 이후(창 1:24-25)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창 2:7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짐승’으로 사람을 지으시고”라고 더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으셨단 말인가? 또,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 후 심판을 언명하실 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창 3:19)라고 하기보다도, “너는 ‘짐승’이니 ‘짐승’으로 돌아갈지니라”라고 하셨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모든 성경의 증거들은 인간의 육신 창조에 있어서 사용된 재료가 하등 동물이 아니고 그저 흙임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창 2:7의 ‘흙’을 ‘하등 동물’로 해석하는 것이 부당한 이상, 유신진화론 역시 결코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가 없다.

 

유신진화론은 이처럼 성경의 증거와만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유신진화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아담이 인류 최초의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인물이라는 것, 아담의 영혼은 뇌로부터의 진화적 산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직접 창조에 의한 독립적 실체라는 것, 아담이 창조와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존재가 되었을 뿐 아니라 하등 동물을 다스리도록 문화 명령을 부여받았다는 것, 또 아담이 언약의 머리였던 고로 그의 범죄가 인류 후손에게 원죄의 비극을 초래했다는 것, 로마서 5장이 예시하듯 첫 아담과 둘째 아담 사이에 대표자로서의 유비가 존재한다는 것 등 개혁 신학의 중요한 진리들이 왜곡되든지 폄하되든지 부인될 수 있다. 이처럼 유신진화론은 신학적으로도 커다란 위험의 소지를 안고 있다고 하겠다.

 

유신진화론은 이처럼 성경적·신학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보수적 장로 교회(및 개혁 신학)의 입장에서는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

 

2. 과학적/이론적 근거에 의한 반대

 

비록 우리가 유신진화론을 반대하는 궁극적 이유는 이 이론이 성경의 진리와 개혁 신학의 가르침에 위배되기 때문이지만, 부차적으로는 생물학적 진화론이 가진 이론적 문제점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에 생물학적 진화론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유신진화론에도 반기를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물학적 진화론이 지닌 과학적/이론적 문제점은 무엇인가? 필자는 여러 가지 사항 가운데에서도 두 가지 문제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생물학적 진화론이 가진 가장 큰 이론적 문제점은 그 이론의 주장 내용과 실증적 자료 사이에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물론 화석의 증거에 관한 문제점이다.

 

화석은 과거에 일어난 생물학적 변화와 발전(혹은 사멸)을 보여 주는 숨김없는 기록이다. 그러므로 화석은 진화론을 입증할 유일의 확실한 증거가 된다. 문제는 그러한 화석의 기록이 진화론의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해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모순처럼 작용하기도 한다는 데 있다.

 

만일 생물학적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발전을 나타내는 전이적 생물체에 대한 화석이 발견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화석의 증거는 미미하기 짝이 없고 많은 경우 그저 공백으로 남아 있다.

 

또 화석의 증거가 보여 주는 바에 의하면 어떤 생물체들의 경우에는 (분명 더 나은 형태로 진화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백 만 년 동안이나 아무런 변화를 나타내지 않은 채 동일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새롭고 복잡한 구조의 생물체들이 어떤 시기의 화석 기록에 매우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일이다. 가장 특이한 예가 소위 말하는 ‘캄브리아기 폭발’(Cambrian explosion)이다.

 

진화론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약 5억 7천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초기의 화석 담지(擔持) 퇴적암 안에서, 주요 해양 무척추 동물문(門)을 대표하는 모든 형태의 생물체들과 후손을 남기지 않은 다양한 다른 문들의 생물체들이 발견된 것이다. 화석의 증거만으로는 이토록 잘 발달된 무척추동물들이 어디서 유래하게 되었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진화론자들의 딱한 실정이다.

 

화석 증거의 불일치와 관련하여 생물학계 내에 매우 의미 심장한 사건은 1972년 엘드리지(Niles Eldridge, 1943∼)와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가 ‘계통적 점진주의에 대한 대안, 단속 평형설’(Punctuated Equilibria, an Alternative to Phyletic Gradualism)이라는 제하의 논문을 발표한 일이었다.

 

단속 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 theory)은 종의 분화를 설명함에 있어 다윈식의 점진적 변화 이론에 반기를 든다. 이는 새로운 종들이 신속히 발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전통적 이론에 수정을 가한 것이다. 즉, 종속 집단이 그 종의 주류 집단과 지리적으로 격리된 채 장시간이 흐르면 얼마 동안 평형 상태(equilibrium)에 도달해 이 상태를 유지하다가, 조건이 맞으면 돌발적으로 종의 분화가 일어난다는 식의 설명을 시도한다.

 

이 견해에 의하면 전이적 형태는 지질학적 시간에서 한 순간에만 나타나고, 단지 오래 존속하는 지배적인 종들만이 화석에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전통적 진화론의 입장, 곧 다윈식의 점진주의(Darwinian gradualism)와 상당한 이론적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화적 변화의 주된 방식이 무엇인가와 관련하여 진화론자들 사이에 첨예한 의견 대립을 유발했다.

 

단속 평형설이 등장하여 전통적 진화 이론에 수정을 가한 것은 그 정도로 화석 증거의 불일치가 생물학적 진화론에 타격을 주고 있었다는 증거인 것이다.

 

둘째, 대진화에 대한 증거 확보의 어려움은 생물학적 진화론의 목표인 바 공통 조상으로(common ancestry)부터의 계통 발생(phylogeny) 수립 노력을 거의 무위로 만든다.

 

오늘날 진화론자들은 생물계의 다양성을 공통 조상으로부터의 발전과 변화로 설명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이 꿈꾸는 이상이자 학문적 노력을 종종 ‘계통수’(phylogenetic tree of life)로 예시하곤 한다. 그러므로 계통수를 구성하는 ‘가지’와 ‘결절’(node)을 정확히 표시하면 할수록 생물학적 진화론은 과학으로서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요, 그러한 표시가 불투명하고 모호하면 할수록 단지 하나의 ‘이론’ 차원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의 현황을 보건대 그 전망은 매우 어두운 채로 남아 있다. 특히 한 생물체와 다른 생물체의 진화적 선후 관계를 이어주는 ‘결절’ 생물체들의 존재가 쉽게 규명되지 않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이미 생물학적 상식으로 되어 있는 ‘소진화’(microevolution)와 ‘대진화’(macroevolution)의 개념을 도입하고자 한다. 소진화는 보통 종의 분화 과정에 수반되는 작은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주로 종 내부 혹은 집단 내부의 유전적 변이와 연관이 된다.

 

이 변화들은 지질학적 연대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짧은 기간에 걸쳐 발생하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사실적 주장과 이를 위한 검증이나 증명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서는 창조론자들까지도 기꺼이 인정하는 바이다. 따라서 생물학적 진화론이 만일 소진화의 범위에 머무르기만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진화론에 대해서 하등의 반론을 제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진화론의 이론은 대진화의 메커니즘까지도 포함하고 있고, 오히려 이것이 훨씬 더 핵심적인 주장점으로 되어 있다. 대진화는 ‘종’ 수준 이상의 진화를 말하는데, 진화론자들은 이 방면에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모든 자원들을 총동원한 가운데 공통 가계의 경로를 추적하고 재구성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실 계통수의 요체는 이렇듯 대진화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대진화가 아무리 ‘관찰과 비교’ 작업을 성실히 한다 할지라도 소진화에서의 고찰과는 달리 온전히 ‘과학적이지 않은’ 탐구 방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대진화가 현재의 입수 가능한 자료로부터 과거의 사태를 소급적으로 추론해야 하는 통시적(通時的) 성격의 작업이기 때문에도 그렇고, 또 매우 불충분한 자료를 기초로 하여 연구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도 그렇다. 이처럼 전반적 작업이 과학적으로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진화론의 숙명적 생리이다.

 

그리하여 1800년 대 생물학자들에게 문제가 되었던 사안들은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다른 목(目)의 새들은 서로 간에 어떤 방식으로 연관이 되어 있는가?” “원생 동물류(protozoan groups) 가운데 어떤 것이 후생 동물(metazoans)의 기원이 되었을까?” “어떻게 상이한 무척추 동물문들이 상호 관련을 맺고 있는가?” 등의 의문이 그러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확실한 바는 계통학적 분류의 낮은 수준으로 내려올수록 공통 조상을 추론하는 것이 쉽지만, 그 이상의 수준으로 올라가면 전혀 사정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강’(綱, class)이나 ‘문’(門, phylum) 같이 커다란 분류 범주 사이를 연관시키고 이로써 계통학적 재구성 작업을 시도하는 일은 자연 과학의 표준적 작업 - 반복된 실험과 검증에 의해 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일 - 성격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진화론자들이 과거에 비해서 생물학적 진화론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훨씬 더 많이 확보되었다고 주장하고, 또 대다수의 진화론자들은 자기들의 학설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사실’이라고까지 말하곤 하지만 대진화의 이론이 아직도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어 있지 않다는 목하의 현실과 공통 조상으로부터의 계통 발생 수립의 전망이 그저 ‘헛된 희망’(wishful thinking)의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감안할 때 생물학적 진화론의 학문적 위상은 아직도 의문 투성이라고 밖에 판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이렇게 불안정하고 전망이 흐린 생물학적 진화론을 핵심적 지지 이론으로 채택한 유신진화론에 대해서도 역시 의심과 비판의 눈초리를 감추기가 힘들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유신진화론이 전 세대에 비해 훨씬 더 많이 그리스도인의 주목을 끌고 각광을 받는다고 해서 이에 동조하는 것은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요동하는”(엡 4:14) 치졸한 모습이다.

 

오히려 우리는 성경의 진리와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에 입각한 바른 신학의 기치를 높이 듦으로써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해야”(고후 10:5)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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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기독개혁신보 "개혁신학은 유신진화론을 수용할 수 있는가?

http://rpress.or.kr/xe/index.php?mid=sinkan&page=6&listStyle=webzine&document_srl=22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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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길게 써서 미안합니다. 짧게 쓸 시간이 없어서요. - Blaise Pascal 




  • ?
    penguin 2014.04.02 00:40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 합니다. 진화론에 관해서는 신학자보다 현장경험이 있는 분이나 생물학에 몸을 담고 있는 분이 비평을 해주셨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샤르뎅 신부는 북경원인발굴에 직접참여 했었다죠. 그런 경험에서 나오는 생각과 이론적인 생각이 많이 다를 거라고 추측합니다. 송인규 교수님의 글은 신학으로 과학을 가늠하려는 옛날 갈릴레오 사건을 생각나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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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칼 2014.04.02 20:39
    전 이글이 좋다고 생각해서 올린 건 아니랍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송인규 교수는 최소한 신학과 과학은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해서 논하고 있고, 신학을 과학으로 가늠하려고 한다고는 보이지 않는군요. 사실, 저는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저자의 전분분야에 해당하는, 이글 전반부의 신학적 관점이 오히려 더 의문이라, 다른 분들의 의견이 궁금해서 올린 거랍니다.
  • ?
    penguin 2014.04.02 23:19
    아니 제 말을 거꾸로 쓰셨군요. 저는 (송인규 교수가) 신학으로 과학을 가늠하려한다고 썼는데...
    창세기에 나오는 동사와 명사 몇 개로 진화론의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16세기에 천동설을 주장했던 신학자들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인류의 진화에 반하여 아담의 역사성을 인정해야 실마리가 풀리는 (개혁주의) 신학의 고민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 profile
    파스칼 2014.04.02 23:42

    네, 그건 제 오타네요. 내용상 다시 살펴보시면 알겠지만, 송인규 교수는 전반부에서 분명 창세기를 해석학적으로 살펴봤을 때 유신진화론(과학적 진화론의 특정 신학적 버전)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걸로 곧바로 과학적 진화론의 진위 여부를 논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요점은, 해석학적으로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거죠. 전 이분의 논거에 별로 동의가 안갑니다만, 이걸 가지고 갈릴레이 이야기에 비견하는 것도 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중세 천동설은 기독교 신학의 영향이라기 보다는 당시의 주도적인 패러다임이있던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의 영향이랍니다.

  • ?
    penguin 2014.04.03 04:19
    위의 글은 분명 진화론을 반박하는 (나름대로의 신학적 과학적 근거를 이용해) 내용으로 봤는데, 제가 잘못 읽었나요? 유신론적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진화론의 진위여부를 논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아마 다음과 같은 경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아도 진화의 현상자체는 인정하면서 매 순간 새로운 형태의 개체가 출현 할 때마다 하나님의 특별 창조사역이라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렇게 생각해 본 사람들 꽤 있으리라 봅니다.

    제가 갈릴레이 사건을 언급한 이유는 그 사건의 핵심이 성경 해석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송인규 교수님이 문자적 해석을 통해 진화론을 거부하게 되는 상황과 잘 맞아 떨어 진다고 봅니다. 송교수님은 뛰어난 신학자이신데, 위의 글 전반부는 제가 알고 있는 개혁주의적 해석방법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 profile
    파스칼 2014.04.03 08:42

    유신진화론은 과학적 진화론에 기반해있으나 분명 특정 신학적 입장에 해당합니다. 유신진화론은 과학적 측면과 신학적 측면 두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죠. 이 글에서, 최소한 송인규 교수는 신학적 측면은 신학적 근거를 가지고, 또 과학적 측면은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판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전자는 이분의 전문적 분야이고, 후자는 이분의 전문적 분야가 아니지요. 어쩄거나, 그는 '신학으로 과학을 가늠한다'는 식으로 비판을 들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고 있고, 또 이 부분에 대해 이미 의식하고 있으며 주의를 기울리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는게 제 말입니다. 만약, 이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면, 신학자가 유신진화론에 비판하는 것 자체가 어떻게 가능할까요? 과학이랑 관련된 신학적 주장이니 다 수용해야하는걸까요? 양자가 얽힌 이 문제가 가진 특성을 한번 고려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신학자가, 신학적 측면에서 유신진화론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될게 없는 것이고, 또 신학자라 하더라도 과학적 측면에서 과학적 진화론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것도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될게 없습니다. 신학적 근거를 과학적 근거로 주장하거나, 과학적 근거를 신학적 근거로 일치시키는 것이 문제가 되겠지요.

  • ?
    penguin 2014.04.03 23:52
    위의 글에서 유신진화론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 진화론의 진위 여부를 논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밝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기에 관련된 제 의견은 위에 피력 되어 있습니다.
  • profile
    파스칼 2014.04.04 06:41

    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답니다. 송인규 교수의 글은 진화론의 진위를 논하고 있어요. 유신진화론은 신학적 측면에서, 과학적 진화론 (다윈주의 진화론)은 과학적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게 신학으로 과학을 재단하는 일이고 갈릴레이 종교재판을 떠올린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내용은 아니라는 겁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는군요.

    위에 @penguin님께서 이야기하신 내용은 이거로군요.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아도 진화의 현상자체는 인정하면서 매 순간 새로운 형태의 개체가 출현 할 때마다 하나님의 특별 창조사역이라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렇게 생각해 본 사람들 꽤 있으리라 봅니다."

    이것도 결국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는 것아닌가요? 그럼 혹시, 님께서도 '신학으로 과학을 가늠하고 재단'하고 계신 건 아닌가요? 위 글에서 송인규교수도 진화의 현상을 부정한다고는 하지는 않습니다. 뭐가 다른가요? @penguin님께서 생각하시는 진화론에 대한 입장을 한번 구체적으로 밝혀주시면, 제가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대답해주시면 대화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다음 중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모두 골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유신진화론에 대한 신학적 비판을 했다는 것 그 자체
    2. 유신진화론에 대한 신학적 비판 내용
    3. 과학적 진화론 (다윈주의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비판을 했다는 것 자체
    4. 과학적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비판의 내용
    5. 3은 문제가 없으나, 신학자가 했다는 것이 문제다.
    6. 4는 문제가 없으나, 신학자가 했다는 것이 문제다.
    7. 모두 아니다 ( 그렇다면, 구체적인 기술 요망 )

  • ?
    penguin 2014.04.05 01:38
    저는 제 나름대로 본문에 대한 감상를 처음에 적어 놓았는데요, 그렇게 말하지 말라니 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다음 문장을 파스칼님 스스로 다시 한번 읽어 보세요.
    "이게 신학으로 과학을 재단하는 일이고 갈릴레이 종교재판을 떠올린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내용은 아니라는 겁니다."
    저런 표현보다는 "저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하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제가 처음에 한 말은 "송인규 교수님의 글은 신학으로 과학을 가늠하려는 옛날 갈릴레오 사건을 생각나게 하네요." 였습니다.
    아주 간단한 말이니 당연히 여러가지 수식어가 빠져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법하기도 한데요, 나중에 좀더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제가 뜻한 바는 저자가 성경의 문자적 해석으로 과학적 결론을 가늠한다는 것이었고, 갈릴레오 사건도 그런 맥락에서 생각이 난 겁니다. (갈릴레오 사건이 역사책에 나올 정도의 중요한 일인데다가 자칫하면 무시무시한 종교재판까지 생각나게 하는 터라 여기에 빗대는 것이 무리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얘기하는겁니다. 이런 오해를 최소화 하기위해 저는 갈릴레오 '사건'이라고 표현했고 종교재판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습니다.)

    파스칼님의 조금 전의 댓글을 읽어 보면 송인규교수의 글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좀 감이 잡히는데요, "송인규 교수는 유신진화론은 신학으로 진화론은 과학으로 반박하고 있다" 라고 요약이 되네요.
    저는 그렇게 이해하지 않았고요, "송교수는 성경의 문자적 해석과 (나름대로의) 과학적 근거로 진화론을 반박하고 있다"라고 이해했습니다. 기독교인에게는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유신진화론이 되는 것이므로 파스칼님처럼 둘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 건지 아리송해서 위의 댓글에서 물어 본 것입니다. 이와는 별개로,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유신진화론적 사고가 가능한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다가 진화현상은 인정하지만 진화론은 아닌 연속적 창조설의 가능성에 대해 위에서 타진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런 생각에 동의 한다는 말은 아니고 파스칼님을 이해해 보려는 측면에서 생각해 본 겁니다.)

    저의 진화론에 대한 입장을 물으셨는데, 저는 (학계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진화론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마지막 7지 선답형 질문은 전반적인 제 입장을 이해해 볼려고 올리신 것으로 보고 다음 말로 대신합니다.
    신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신학의 결론은 신학으로 검증하고 과학의 결론은 과학으로 검증한다. 신학으로 과학을 검증하거나 과학으로 신학을 검증 (또는 평가)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두 학문의 결론이나 형이상학적 전제는 서로 교차 적용될 수 있고 이것이 상호 진보를 위해 중요하다. 과학과 신학은 우리 자신과 환경, 그리고 조물주에대해 여러가지 상호 보완적인 안목을 제공해 준다.

    여기에 비추어 볼 때 송인규 교수의 전반부 글의 비판 대상이 신학의 한 종류 (유신진화론)로 이해 된다면 파스칼님과 저는 의견이 같은 것이고, 진화론으로 이해 된다면 파스칼님이 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 profile
    파스칼 2014.04.05 09:32

    마지막에 말씀해주신 @penguin님의 신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한 입장은 저도 아주 공감이 가고, 또 송인규 교수도 마찬가지로 공감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이견을 제시한 것은, 결론이야 어떻든 이글도 최소한 그런 입장에서 쓴 글이라고 생각했기 떄문입니다. 송인규 교수의 이 글 전반부 글을 읽어 보시면, 계속해서 '유신진화론'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어요. 그런데 단 한번도, 그냥 '진화론' 또는 '과학적 진화론' 또는 '생물학적 진화론'이라고는 표현하지 않고 있습니다. '진화'라는 말이 나오는 14번 중에 단 한번도 말입니다. 반대로, 후반부에 그는 '생물학적 진화론' 또는 '진화론'이라는 표현만을 쓰고 있는 걸 알 수 있을 껍니다. 이건, 얼마나 그가 이 구분에 신경쓰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될 껍니다. 따라서, 저는 여전히 "저자가 성경의 문자적 해석으로 과학적 결론을 가늠한다"는 평가는 이 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봅니다.

    답글 전반부에 제 글에 대한 불쾌함을 표현하셨는데, 제 표현이 기분나쁘셨다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애석하게도, 제 비판이 님의 발언권을 가로막는 걸로 느끼신 것 같은데, 당연히 제 의도는 그런게 전혀 아니고 누구도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제 글을 그렇게 해석하지는 마시길. 저는 @penguin님의 의견을 존중하고 또 그래서 애써 이견도 남긴 거랍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답글도 남기고 있는거구요.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
    penguin 2014.04.06 05:03
    정중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본문을 다시 읽어 보니 그런 미묘한 차이가 있군요. 전반부에서 아담과 관련된 부분을 좀더 부각시켰다면 더 명확했을텐데요.

    인터넷에 퍼진 단편적인 정보를 종합해 보면, 송인규교수님은 옛날에 어떤교회에서 한 강의 (2010년 10월)에서 유신진화론에대해 긍정적으로 얘기했다가 사람들의 반발과 본인이 속한 합신교단측의 압력으로 (이건 제 추측) 공개 사과를 한 적이 있습니다. 위의 글은 그 이후(2011년 3월) 에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3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동안 생각이 바뀌었어도 사과문까지 낸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가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않습니다만. 아마 개인적으로 물어 봐야 할듯하군요.

    다음은 그 사과문과 같이 게재된 합신교수들의 입장입니다. 유신진화론에 대한 신학적인 입장을 잘 요약해 주고 있는 것 같아 여기 인용했습니다.

    ==================================================

    <개혁신보 제 597 호>

    사과문

    본인은 2010년 10월 합신교단의 N교회에서 고등부 이상의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은 진화/진화론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는 주제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강의안의 적절치 않은 내용구성과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들로 인해, 합신교단 소속 교회들과 여러 목사님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는 본인이 합신교수 본연의 자세와 책무를 망각한 처사로서,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잘못임을 통감하는 바입니다. 이번 일을 교훈삼아 앞으로는 이와 같은 사래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거듭 여러 목사님들과 본교 이사회 및 교수회에 죄송한 마음을 표합니다.

    2011년 8월 1일 송 인 규


    

‘유신 진화론’에 대한 합신 교수들의 입장




    유신 진화론은 현대 과학의 이론이 가정하는 진화론의 틀에 따라서 창세기 1장을 해석한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이론이 가정하는 진화론의 틀이란 하나의 가설일 뿐 확정된 진리가 아니며, 그 가설을 따라 "하나님의 창조"를 주장하는 시도는 오류이다.

유신 진화론을 받아들일 경우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오류를 범한다.

    

(1) 이분법의 오류: 유신 진화론은 성경을 단지 주관적 의미와 목적만을 말하는 것으로 보며, 객관적 사실은 과학이 말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신학적 사실과 의미조차도 성경의 정당한 해석에 근거하기보다는 오히려 진화론적 범례를 따르는 과학을 기초로 설명한다.



    (2) 이중진리의 오류: 유신 진화론은 동일한 진리가 한 편으로는 성경의 증거로, 다른 한편으로는 진화라는 과학적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주와 인류의 기원에 관련해서는 진화론적 증거를 말하는 과학의 진리 인식이 성경의 증거보다 우월하다고 말한다.



    (3) 성경해석의 오류: 유신 진화론은 진화론에 따른 과학의 증거에 기초하여 기원을 설명해야 한다는 진리인식의 원리에 따라서 창세기 1장을 창조와 과정에 관한 역사적 사실의 기록으로 보지를 않는다. 단지 온 자연과 인간이 피조물이라는 의미만을 전달하는 문학적 기록으로 볼 뿐이다. 유신 진화론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된 최초의 역사적 인물로 인정하지 않는다.



    (4) 창조와 섭리의 혼동: 유신 진화론은 창조와 섭리를 구분하지 않는다. 창조를 진화의 과정으로 환원시킨다. 그 결과 창조를 제 1원인이신 하나님의 직접적인 활동으로 보지 않으며, 단지 진화라는 제 2원인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 해석을 한다.

    

(5) 대표적인 교리의 오류들: 유신 진화론은 죄를 의지적 불순종으로 보지 않으며 성경적 죄의 개념을 부인한다. 모든 악은 자연의 본질적 상태로 이해할 뿐이다. 아담과 하와를 역사적으로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여기므로 인간의 죽음이 그들의 타락의 결과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인한 구원도 연다고 주장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진화하여야 할 정점에 는 오메가 포인트로 여겨질 뿐이다. 따라서 합신 교수들은 유신 진화론이 성경의 교훈에 어긋나는 그릇된 이론으로 판단한다.
  • profile
    파스칼 2014.04.06 17:21

    좋은 정보 감사. 송인규 교수와 관련한 그 사건은 저도 이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것 때문에 입장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사실, 그 강의안 이라는 것도 이전에 살펴보았었는데 유신진화론에 다소 유보적으로 느껴질 뿐 지지하는 입장은 아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어쨌거나, 합신 측의 대응도 그렇고, 합신 교수들의 입장이라는 이 다섯가지 하나하나가 저로서는 참 갑갑하게 느껴지는군요. 혹시, 개인적으로나마 송인규 교수의 진심(?)을 확인하게 되면 좀 귀뜸해주시길. :)

  • profile
    CONTIGO 2014.04.07 09:50
    모든 신학자가 다 송교수님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진 않을것 같아요. 생각보다 복잡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창조에 대한 신학자들의 견해가 어떤지, 진화론에 대해서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있는지(보통 다섯단계로 구분하는데 자연진화를 선택하냐 안하냐에서 결정적으로 갈리는 듯 하구요) 그런 관점에서 유진진화론의 해석도 폭넓게 달라질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무로부터의 창조는 조직신학자들이 주장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 성서학자들은 무로부터의 창조에 대한 성경의 결정증거는 없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요(전통적 조직신학자들이 갖고 있는 한계일지도...) 여튼 저는 현 상황에서는 신학자들이 과학자들의 연구자료를 비평하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신학자들은 과학의 연구결과(의 한계)를 두고 B가 답이 아니니까 (아직은) A가 답이다 식의 논리로 주장을 펼치는 부분이 있긴 한데 그건 옳지 않은것 같아요. 오히려 자연주의적 방법론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잣대를 대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이 되요. 과학이 갖는 독특한 전제(예컨대 과학 철학)를 인지하지 않은채 무조건 비판만 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 관점에서 만연하는 유신진화론 역시 신학적으로 정리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송교수님의 글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두리뭉실한) 유신진화론을 언급하고 계시는듯 한데 우종학/장대익 박사님과 같은 유신진화론에 가까운 분들은 신이라는 존재도 인정하고 방법론적 자연주의도 인정하는 위치에 계신듯 했습니다. 다만 제가 알기로는 "진화론"이라는 것 자체가 개혁주의 신학자들과는 대치될수밖에 없는 구조, 타락과 구속,를 지닐수밖에 없기때문에 결코 진화론은 그분들께 수용되기 어려울것 같네요.
  • profile
    파스칼 2014.04.07 12:13

    참고로, 장대익 교수는 무신론자로 돌아선지가 꽤 됩니다. 게다가, 아주 강하게 회심했답니다. 이제 한국적 맥락에서, 도킨스나 데닛과 같은 신(新)무신론자에 속한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군요. 장대익, 신재식, 김윤성의 대담집 '종교전쟁'을 참고하시면 좋을 듯.

  • ?
    왜죠 2014.04.07 21:43
    지금은 서울대 Free-thinkers의 지도교수이기도 하죠.
  • profile
    파스칼 2014.04.08 10:00

    그렇죠. 카이스트에 있을 때도 비슷한 모임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한떄 복음주의자였던 이력이 무신론운동을 하는데도 큰 자산이 되겠지요. 상대의 약점들을 명확히 꽤뚫고 있을테니.

  • profile
    CONTIGO 2014.04.08 01:27

    저도 종교 전쟁 읽고 그동안은 무신론자로 생각했는데요. 얼마전에 장대익 박사님과 몇년전 대담을 나누었던 한 박사님의 말씀에서 장박사님이 유신진화론자일거라는 이야길 하시더라구요. 2000년도 초반에는 거의 신앙을 잃을뻔 하다가 유신진화론에 안착한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 역시 무신론자에서 기독교인이 된 과학자인데 장박사님과 대담을 나누며 그가 무신론자가 아니라고 결정을 내리신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기독교의 하나님은 거부하는 그런 존재로 남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가장한 유신론자인지도 모르겠어요.

  • profile
    파스칼 2014.04.08 09:25

    정말인가요? 이상하군요. 장대익 교수가 대외적으로 무신론자임을 밝힌 글들은 제 기억으로도 여럿이 됩니다. 혹시 그럼, 무신론자 그룹에 파송된 기독교계의 트로이 목마? 예를 들면, 프레시안의 다음 글을 보시면,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90102
    자신이 무신론적 진화론자임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죠. 이 글은 2008년 이군요.

  • profile
    CONTIGO 2014.04.10 15:42
    저도 이글과 종교전쟁을 읽고 그분께 여쭤본 것이었는데요...

    과학자들은 용어에 대한 분명한 정의와 영역이 늘 필요한것 같았어요. 요즘 과학 스터디를 하면서 더욱 실감하는 것인데 가정, 전제, 범주에 대한 명확함을 반드시 요구하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무신론에 대해 장박사님이 이야기 하는 것으로 그대로 받아들일수 없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공공연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신걸로 봐서 장박사님은 전통 기독교의 하나님은 거부하고 계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자연주의의 두 형태(Methodological and Metaphysical)에서 두개는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자연주의로 귀결되지만 방법론적 자연주의 자들중에서도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아마 그런 차원에서 장대익 교수를 유신진화론으로 김창환 박사님이 설명한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두분의 만남 이후 정말 무신론자로 선언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여튼 요즘 배우면서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라는 것을 늘 상기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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