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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클럽

싸이 복클 시절부터 창조논쟁을 관심 있게 지켜만(!) 봤습니다.
가끔 대화에 참여하긴 했으나 이 분야에 대한 이해 수준이 대중과학도서 수준이라 제 생각을 주장하기보단 주로 제가 궁금해 하던 것을 묻는 정도였습니다.

제가 창조논쟁에서 도움을 얻고 싶은 것은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설계와 관련된 구체적인 '증거들'에 대한 논박입니다. 이전의 논의들이 증거에 대한 세부적인 논박 없이 섣부르게 설계가 과학이냐 아니냐, 창조론과 다를 바가 뭐냐 등의 한단계 위의 논쟁으로 튀어 버려서 항상 아쉬웠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전문가분들께서 잘 채워 주시길 기대하고 있고 저도 숟가락 하나 얹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둘째는, 생명의 역사와 신학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와 신학에 대한 이해가 모두 준전문가 수준도 못 되다 보니 이것 역시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정도가 되겠네요.

이번 글은 두 번째 주제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설계론에서 보여 주는 증거들을 통해 초월의 존재를 충분히 짐작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물리학으로 환원될 수 없는 생명 현상의 창발이 과연 설계에 의한 것인지, 혹은 아직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자연에 내재된 어떤 힘 때문인지 판단을 미루고 지켜 보는 중입니다.

그런데 자연의 역사와 현재를 살펴볼수록 기독교 정통신앙의 전지전능한 신의 개념과 완전하고 선한 창조의 순간이 지구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존재했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곤란해 집니다.
이 지구 위에서 벌어진 생명의 역사, 즉, 대량멸종의 반복으로 점철된 과거를 돌아볼 때 생명과 의식의 탄생을 가능케 한 신이 있다면 그는 과정신학이나 열린신론에서 말하는 신과 비슷할거라 생각합니다.
다윈주의의 철학적 함의는 유신진화론자들을 곤란하게 하고 그보다 큰 생명 전체의 역사는 정통신앙을 곤란하게 만드는 듯 합니다.
다윈주의의 문제는 설계로 해결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멸종의 역사는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신은 왜 자연이 조화롭게 유지되거나 발전하도록 돕지 않고 대량 멸종의 반복을 통해 생명의 역사가 진행되도록 했을까요?
인류 이전의 동식물의 죽음은 인류에게 화석연료를 공급해 주기 위한 신의 배려였을까요?
과연 인류가 자연과 더불어 평화롭게 지냈던 시기가 있었을까요?
인류가 이타심으로 충만했던 적이 있었을까요?

주기적으로 소행성이 강타하고, 빙하기가 엄습하던 지구가 어느 순간 인류에게 온화한 곳으로 변했을 것이라 추측해 보는 것은 역사를 신앙으로 짜 맞추면 가능하기는 한데 개연성은 떨어져 보입니다.
이 세계를 가능케 하는 신이 변덕스런 존재가 아니라면 말이지요.
생명현상을 보았을 때 초월의 '존재' 가능성은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자연의 역사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는 초월의 '성향'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전지전능과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타락 이전의 평화가 가득했던 창조의 순간은 없었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과정신학이나 열린신론으로 가야만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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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칼 2014.03.12 09:28
    좋은 주제네요. 이건, 신학하시는 분들이 참여를 해주셔야할 듯 한데. 먼저, @ooduby 님께서 생각하시는 '과정신학', '열린신학'이란 어떤 신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profile
    ooduboy 2014.03.12 15:03
    과정신학과 열린 신론에 대한 이해가 얕으니 정확한 개념을 연결시키기는 무척 모자랍니다만, 거칠게 적어보자면.

    시공간내의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물체의 운동만으로 시공간의 현재 단면이 앞뒤로 움직이게 되는 우리 우주의 시공간의 구조에서 추측해 보았을 때 저는 신에게 우리 우주는 이미 완결된 시공간 덩어리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선 신이 과거와 현재만을 인식하고 신에게 미래가 개방되어 있을 것이라는 과정신학의 개념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 부분에선 신의 초월성을 강하게 인정하고 있는 편입니다.

    과정신학과 비슷한 지점은 신이 완결된 시공간 덩어리가 완결되기까지의 과정을 미리 정해 놓지 않고 그 과정을 통해 피조물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시공간을 창조하는 그 자체가 상당한 모험인 것이지요.
    비록 신에겐 창조와 동시에 완결된 하나의 사건이겠지만 말입니다.
    신에게 새로운 경험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사건, 경험이라는 단어들이 시공간에 속박된 우리의 제한적인 인식의 표현이라 이것은 유비일 수 밖에 없겠네요.

    이 우주에 인간의 의식이 탄생하기까지 신이 보기에도 좌충우돌인 역사가 필요하고, 그 의식이 몽매한 상태에서 신의 속성을 발견하고 닮아가기까지 그 의식과 신 사이의 수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야 하는 것.
    이게 우리 우주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이미 그에겐 실현된) 신의 의도라 짐작해 봅니다.

    그리고...
    전 우리 우주가 신이 시도한 여러가지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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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칼 2014.03.12 19:09
    흥미롭네요. 그런데, "이 우주에 인간의 의식이 탄생하기까지 신이 보기에도 좌충우돌인 역사가 필요"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고, 그게 @ooduby님께서 처음 제기하신 멸종의 문제에 구체적으로 어떤 해답을 줄 수 있는건지요? 전 그게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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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oduboy 2014.03.13 00:25
    좌충우돌의 역사로 대표적인 것인 대량멸종의 반복일 것입니다.
    신이 조화와 평화를 추구하는 의지가 있고 그것을 한 번에 실현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런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신의 입장에선 그러한 역사가 잔인하게 여겨지지 않고 자연스런 창조의 방법으로 인식될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 신이 우리의 의식, 즉,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의식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의 끝에 있는 존재이고, 일관성을 신뢰할 수 있는 존재라면 그러한 신의 입장에선 대량멸종의 반복은 삽질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과정을 악이라 규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의식이 없는 생명체들의 흥망에 선과 악의 개념이 끼어들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 과정의 목표가 의식의 탄생이라면, 그 결과로 창발한 의식이 자신의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그것을 엉망진창이라 표현할 만한 과정이겠지요.
  • profile
    ooduboy 2014.03.13 00:33
    좌충우돌의 역사가 '필요'하다고 표현한 것은, 우리 우주 시공간의 바깥에 존재하는 신의 입장에서 그리 표현해 본 것입니다.
    우리 우주의 창조의 시점에서 이 우주가 가진 여러 가지 특성들을 통해 의식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그러한 역사가 진행될 수 밖에 없는 것을 신은 알겠지요.
    게다가 아마도 신에겐 이미 완결된 사건들일 테구요.
    다른 우주에선 좀 더 나았을지도...^^;
  • profile
    파스칼 2014.03.13 00:39
    네, 물론 그런 멸종이 좌충우돌의 역사의 예가 될 수 있겠죠. 그런데, 제 질문은 그게 의식을 창조하는데 왜 필요하냐?는 겁니다. 신이 의식을 요리조리 만들어보다가 실패해서 판을 그냥 여러번 엎었다는 건가요? 아니면, 의식을 만드는데 멸종이 필요해서(도대체 왜?) 그렇게 했다는 건가요? 그렇다면, 무슨 연유로 필요했다고 보시는건가요?
  • profile
    ooduboy 2014.03.13 00:53
    '필요'라는 표현이 문제인 듯 하네요.^^;

    풀어서 써 보겠습니다.
    신이 이 우주를 만들려고 합니다.
    아마 그 우주에서 여러가지 의식의 형태 중 하나가 만들어지게끔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닐까 합니다.
    우주상수도 정하고 여러가지 상수들도 정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조건의 우주에서 생명을 발생하게 하고 나아가 의식이 만들어지게 하는 과정을 '보니' 좌충우돌의 역사가 펼쳐지는 겁니다.
    그래도 그는 이 우주의 시공간의 덩어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필요'보다는 이 우주의 조건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필연'이라 해야겠군요.
  • profile
    파스칼 2014.03.13 01:10

    그러니까, 그게 왜 '필연'... ㅎㅎㅎ 제가 계속 질문을 드린 이유는, 의식을 만들어 내는데 멸종의 방법을 피할 수 없었던 이유가 명확해지지 않는다면, 그건 결국 '그냥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꺼다'는 불가지론과 다를게 없다고 보거든요. ooduboy님의 이야기도 제겐 별로 다를게 없이 들리는군요. 그런데, 그렇다면 과정신학이나 열린신론이 왜 필요한건지가 잘 납득이 안가네요. 그냥, 전지전능한 신이지만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는거랑 어떤 차이가 있는건가요?

  • profile
    이인용 2014.03.13 01:32
    '멸종의 방법' 은 폐북에서도 파스칼님이 칼을 세우셨던 부분인것 같에서 익숙합니다.
    제가 폐북에서 쓰신 댓글들을 잘 이해했다면 "대규모의 멸종사건"에 대해서 파스칼님은 알수없다는 정도로 정리를 해두신것 같은데요.? 거기서나-폐북- 이 새로운 공간에서도 멸종사건이 항상 대두되는 것은 이부분에 대한 신의 선한 의지를 발견하지를 못하고 있어서 그런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렇다면 파스칼님께서는 이부분에 대한 정의나 ID 의 입장에서 소개해주신다면 한수 배울수 있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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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칼 2014.03.13 10:22
    이인용님, 저도 멸종문제에 대해서 아직 다양한 견해에 열려있는 편이고 특별히 어떤 근거를 가지고 주장할만한 강한 의견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 앞으로 함께 논의해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와 ooduboy님와 견해를 달리하는 것은 저는 멸종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과정신학적 접근법을 필요로 한다고 보진 않는다는 겁니다. 과정신학적 신관이 필요한 이유는 다윈주의를 수용하기 위해서 요청되는 것이라는게 제 입장입니다. 그런데, ooduboy님께서는 다윈주의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멸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과정신학적 신관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어요. 전, 정말 그러한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설명력을 제공해줄수 있는건지 확인해보려는 겁니다. 일단 그게, 이 몸글의 논점에서 필요한것 같군요.
  • profile
    ooduboy 2014.03.13 01:40
    답변이 궁색해도 계속 질문해 주셔서 감사하구요.
    제 얕은 생각을 조금은 더 다듬는 것에 도움이 되니 혹시 지루하시더라도 쭈욱 부탁드립니다.ㅎㅎ

    대량멸종이 전통적인 유신론의 전지전능한 신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의 출발입니다.
    아마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그건 전지전능한 신의 일관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니 역사를 신앙에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는 한 그럴 듯하지 않습니다.

    신이 대량멸종의 방법을 '써야만' 했을까.
    전 그가 조정해 놓은 우리 우주의 조건에선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도적으로 대량멸종을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이 우주를 '알면서도' 만들어 냈으니 그리 해석해 봅니다.
    꽤나 아슬아슬한 과정을 지나 '다행히도' 의식이 탄생할 수 있는 수준까지 생명의 역사가 다다른 것이겠지요.
    다른 우주에선 더 나은 방법을 실현해 냈을 거라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혹은 의식의 탄생에 실패하고 차갑게 식어간 우주를 어딘가에 만들었을 수도 있구요.
    우리 우주가 비교적 다행인 사례인지 혹은 최악의 사례 중 하나인지 궁금합니다.^^;

    왜 굳이 거북한 과정이 일어나는 이 우주를 만들어 냈을까.
    그의 넘치는 창조성일 수도 있고 뭐 다른 이유들이 있겠습니다만 그걸 알 수는 없는 노릇이구요.
    다만 있을 법하지 않은 우리 의식의 특징에 비추어 봤을 때 그의 성향을 짐작해 보는 것일 뿐입니다.

    모험을 좋아하는가 봅니다.
    멸종을 피해서 다행스럽게 출현한 의식과 소통하고 신이 만든 세계를 보여 주고 그 너머를 상상하게 하는 것이 그를 즐겁게 하는가 봅니다.
  • profile
    ooduboy 2014.03.13 01:46
    능력이 넘치지만 실패할 수 있는 신.
    자연의 '역사'를 통해 상상해 볼 수 있는 신의 본성이 전통적인 유신론의 신과 비슷한지 실패할 수 있는 신이란 개념과 비슷한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 profile
    이인용 2014.03.13 04:36
    ooduboy / 이신론과의 차이점은 무엇이죠? 칼 바르트도 "움직이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다." 라고 했는데 님이 말하는 신은 죽은 신이 아닐까요?
  • profile
    ooduboy 2014.03.13 04:53

    신이 이 우주에 의식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추정할만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계일수도 있고 아직 그 법칙을 모르는 창발 현상일수도 있겠구요.
    법칙만 정해 놓고 이 우주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 않는 이신론의 신과 달리 우리 우주의 신은 분명 지적인 존재를 만들겠다는 의도를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우주가 존재하는 목표가 신을 인식할 만한 수준의 의식을 지닌 생명체가 등장하는 것이란 뜻이지요.

  • profile
    ooduboy 2014.03.13 05:09
    제가 이해한 신은 창조성으로 가득해서 모험을 즐기는 신입니다.
    팔팔하게 살아 있죠!^^
  • profile
    이인용 2014.03.13 06:40

    "전 그가 조정해 놓은 우리 우주의 조건에선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도적으로 대량멸종을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이 우주를 '알면서도' 만들어 냈으니 그리 해석해 봅니다. "
    꽤나 아슬아슬한 과정을 지나 '다행히도' 의식이 탄생할 수 있는 수준까지 생명의 역사가 다다른 것이겠지요." 오드보이님께서 댓글에 써놓은신 글은 제가 이해하기는 이신론의 신을 얘기하는 것 같애서 말씀드린 겁니다.
    셋팅되어있는 우주가 진화하면서 신을 인식하는 생명의 탄생까지 가는 과정을 설명한것인줄은 모르겠으나 간섭하지 않으시는 신으로 읽히는군요. 지켜보기만 하는 신과 진화의 역사가운데 섭리하시는 신은 차이가 있다고 봤거든요.

  • profile
    ooduboy 2014.03.13 07:00
    의식의 탄생을 기준으로 신이 개입하는 정황과 수준을 짐작해 보자면 의식의 탄생 이전의 역사에선 신은 이신론의 신처럼 이해될수도 있겠습니다.
    마치 자전거 부품을 조립해가는 과정 그 자체는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그 과정이 의도하는 바는 자전거 타기가 분명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신론의 신이라면 자전거 부품이 조립되는 과정이 가능케 하고선 자전거가 완성되어도 그저 지켜만 보겠죠.
    제가 이해한 신은 그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싶어서 안달난 신입니다.^^;
  • profile
    ooduboy 2014.03.13 07:02
    자전거를 적극적으로 조립할 수도 있고, 자전거가 조립될 수 있도록 조건만 만들어 둘 수도 있겠네요.
    설계와 창발의 차이가 될 것이구요.
    어쨌든 자전거 타기가 목적입니다.
  • profile
    이인용 2014.03.13 09:31
    자전거 타기는 좋은 비유는 아닌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드보이님의 말씀을 이용해서 '의식의 탄생'전에 대해서는 신의 관여나 간섭이 없을것이라는 말은 의신의 탄생이 아직없는 존재에 대해서 신은 관계하실 생각이 없거나 관심밖의 존재라는 말이 될수있죠.
    그리고 의식의 탄생이라는 기준도 모호한것이 추상적으로 들려서 의식의 탄생이란 어떤 상태를 말씀하시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제가 이신론과 차이가 없다고 당초에 말씀드린 의미는 님이 말씀하시는 진화과정 속에 어떤 신의 주관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가 난독인가 ;;;
  • profile
    ooduboy 2014.03.13 13:02
    난독 아닙니다. ^^;
    제가 제 생각을 명료한 개념으로 풀어내지 못해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부담 없이 계속 생각을 주고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의식의 탄생은 현생인류의 탄생으로 바꿔도 무방하겠습니다.
    지구 위에 의식을 가진 존재는 인류 밖에 없으니까요.

    이신론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 여쭈어 보아도 될까요?
    제가 이해하고 있는 신, 즉, 의식의 탄생을 위해 우주의 조건을 조정하고 그 결과로 탄생한 의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신이 이신론의 정의에 부합하는지요.
  • profile
    파스칼 2014.03.13 10:47

    저는 ooduboy님이 이야기하는 신관이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가 도무지 잘 잡히지를 않는군요.이건 과정신학의 신관도 아닌데, 그렇다고 그것보다 장점을 지닌 것도 아니고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전지전능'에 관한 이해가 아마 저랑 많이 다르신 듯 합니다. ooduboy님의 말대로라면, 신의 아들 예수가 죽었은 것이 신이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겠죠. 저는 기독교 신관을 그렇게 협소하게 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뭐, 이건 일단 각설하고...

    먼저 한가지, 말씀하시길 "신이 대량멸종의 방법을 '써야만' 했을까. 전 그가 조정해 놓은 우리 우주의 조건에선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그럼, 그가 애초에 조정을 달리해놓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었나요? 결국, 신이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다는 말인 건가요, 아니면 그것이 최선이있다는 말인가요?

    만약, 능력이 있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또 그이유가 '모험을 좋아해서(?)', 라면 이건 말이 좋아서 모험이지, 그야말로 변태적 신관으로 귀결하는 것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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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oduboy 2014.03.13 13:57
    이 정도 신관에서 변태의 냄새를 맡으시다니 파스칼님은 공명정대한데다가 순결하기까지 하시군욧!^^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도 모험이겠고, 비극적 결말을 알면서도 사랑을 위해 불나방처럼 뛰어 드는 것도 모험이겠지요.
    후자의 모험이라면 변태라고 손가락질 받아도 뭐 어쩌겠습니까.

    이 우주가 이렇게 만들어진 건 신의 능력이 어찌되었든 이 우주에 대해선 당연히 그의 최선이겠지요.
    일부러 변태처럼 느껴질만큼 망쳤을리가 있겠습니까.
    전 신의 넘치는 창조성과 그로 인한 다중우주의 존재를 추측해 보는 것으로 이것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는 그의 본성상 창조할 수 밖에 없고, 그 창조의 결과물은 다양할 겁니다.
    우리 우주는 그 중의 하나로 그를 꽤나 곤혹스럽게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혹시나 우리 우주의 어딘가 다른 항성계의 행성에선 우리보다 나은 생명의 역사가 펼쳐졌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거기라고 우리와 다르겠습니까.
    잊을만하면 소행성이 떨어지거나 심하면 적색거성에 먹혀버리는 행성도 있겠지요.
    왜 신은 생명을 탄생하게 할 수는 있지만 생명의 번성엔 적대적인 우리 우주를 만들어 낸 것인지, 왜 창조의 순간에 이 엉망의 역사를 멈추지 않은 것인지, 그의 창조성은 변태성도 무시할만큼 그리도 대단한 것인지 알 도리는 없지요.

    분명한 사실은 이 지구의 생명의 역사가 조화와 평화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것이라는 거죠.
    파스칼님께서 변태의 냄새를 맡으신 것은 사실 생명의 역사 자체가 그만큼 엉망이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전지전능의 이해를 넓고 깊게 할 수록 저는 그러한 시도야말로 역사와 신앙을 더 악화시키고 뒤틀어 버린다고 생각해요.
    엉망인 역사는 엉망이라고 인정하자는 것이지요.
    설계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설계로 인정하고 말입니다.
    신의 아들 예수가 죽은 것은 신이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맞습니다.

    제 신관의 (저에게만) 장점은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좌충우돌인 생명의 역사를 좌충우돌인 그대로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역사는 '실패'가 반복되는 역사입니다.
    고전적인 유신론에서는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죠.
    파스칼님의 말씀대로 전지전능에 대한 넓은 이해를 통해 이것을 해결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논리야 만들어지겠지만 개연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니다.
    전통적인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하고 완전한 창조의 순간을 생명의 역사 어디에 위치시킬 수 있을까요.
    35억년 내내 번성과 대량멸종이 반복된 '험난한' 세계가 어떻게 그렇게 '온화한' 세계로 바뀌었을까요.
    전지전능한 인격신이 35억년간은 이신론의 신으로 잠잠히 있다가 어느 순간 지구를 에덴으로 만들었다는 것인가요.
    고전적인 유신론과 역사를 조화시키려는 노력의 개연성 없음을 해결해 보고자 하는게 제 신관의 보잘것 없는 장점이라면 장점이겠지요.

    우리 우주의 시공간을 통해 개입하는 신의 능력이 제한적이고 때론 무능해 보이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 과정신학과 연결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 신은 이 우주의 시공간 바깥에 초월적으로 존재하며 이 시공간을 하나의 완결된 사건으로 이미 만들어냈다는 것은 과정신학과 열린신론과는 분명하게 차이나는 부분입니다.
  • profile
    파스칼 2014.03.13 14:26
    제가 순수해서라기 보다는, 원래 변태끼리는 통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셔야... ㅎㅎ
    좌충우돌의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뭐 좋습니다. 그런데, 그게 장점으로 보이진 않네요.

    제가 듣기엔 이렇게 들려요. 예를 한번 들어봅시다.
    지금 우리 눈 앞에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고 가정 해보죠. 두사람 A, B가 변론을 펼칩니다.
    A는 주장하기를, 이 사건을 아직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죄를 때문이라거나 더 큰 선을 위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변론을 펼침으로써 자신의 신관을 변호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B는 주장하기를, 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기위해 그냥 좌충우돌의 역사를 인정하자고 합니다. 신은 죽음을 피할만한 능력이 없었거나, 아니면 죽음이라는 모험을 즐기는 취향을 가진 아주 팔팔한 신이라고 주장합니다.

    B의 주장이 물론 깔끔하긴 하네요. 그런데, 그게 무슨 장점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깔끔하게 포기한다는 느낌이랄까...
  • profile
    ooduboy 2014.03.13 15:40

    그나마 덜 억지스럽다는 것이 장점이죠!


    유신진화론자들이 다윈주의를 인정하면서도 인간에 대해선 그 법칙을 받아들이길 주저하는 것이 어색하듯이 고전적 유신론자들이 대량멸종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신의 전지전능을 깊게 사색하는 것이 어색하다는 것입니다.


    포기한다는 것이 뭘 포기해야 한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만 혹시 신의 전지전능을 포기해도 우리의 구원에 별 영향은 없을 듯 하니 염려는 안 해도 될 듯 하구요.

    그러나 역사는 포기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제 의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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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칼 2014.03.13 15:57

    신의 능력이 그리 신통치 않고 좌충우돌이라면, 구원이라도 하긴 해줄 수 있을까도 심각하게 의심해봐야하는거 아닐까요? 그게 상식적인거 같은데 말이죠. 어색한걸로 보자면, ooduboy님의 신관도 오히려 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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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oduboy 2014.03.13 16:25
    고전적인 유신론의 신에 비해 모자라 보이는 것이지요.
    실패, 엉망, 좌충우돌... 이런 단어들로 표현했다고 해서 그리 생각하시면...^^;
    계속 강조했듯이 이 우주에 대한 신의 의도는 분명하고 강력하다고 생각해요.
    그의 결과물들은 험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경이롭습니다.
    우리의 의식이 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역사가 진행될거라 기대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우리도 멸종의 역사에 포함될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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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칼 2014.03.13 18:08

    네,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을'이니 '갑'에게 기대를 거는 수 밖에 없겠죠. :) 여하튼, 신관을 수정해서 역사적 문제를 해소하자는 면에서는 유신진화론이 시도하고 있는 과정신학적 접근법과 상당부분 궤를 같이 하는 것 같군요. ooduboy님의 입장은 알겠습니다. 제 비판에 성실하게 답해주셔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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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oduboy 2014.03.13 23:53
    대화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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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마센세 2014.03.13 14:10
    제 생각에는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쭉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몸글에서 말씀하신 우주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생명의 발생과 진화를 포함한 지구와 우주의 모든 역사를 다루는 모든 이론들에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 과학자들이 아직도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다양한 우주 모델과 진화 모델을 만들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체의 DNA속에 설계의 정보가 들어있는지 인류가 발견한 가장 작은 미립자 속에 어떤 비밀이 있어서 그것들만으로 온 우주의 다양한 모습이 만들어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소개된 여러 모델 중의 한 귀퉁이의 증거만이라도 발견하려고 너나 할 거 없이 더욱더 고능력의 망원경을 만들려고 애쓰기도 하고 우주로 가는 기술을 만듭니다. 진화나 빙백이나 초끈이론이나 이런 것들은 모두 과학입니다. 과학임은 분명하나 과학이라는 자체만으로 그것이 불변의 진리가 아닙니다. 그저 현상을 다루는 학문일뿐입니다. 조건이 바뀌면 공식을 바꿔 적용하는 것이 과학입니다. 과학이 철학과 사상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과학은 이론을 세우고 증명하는 학문으로 두고 아직 증명이 안된 학문은 참고를 하되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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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oduboy 2014.03.13 14:21
    저는 구체적으로 반복적인 생명의 대량멸종의 역사를 어떻게 신 이해와 조화시킬 수 있을지 시도해 본 것입니다.
    전지구적인 대량멸종의 역사는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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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마센세 2014.03.13 14:32
    어떤 말씀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과학의 테두리 안에서 대량멸종은 확실합니다. 그것을 토대로 선캄브리아기에서 현생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나누고 각 시대의 끝은 당대의 종들이 사라져버리는 증거들이 지구상에 산재해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신의 전지전능성을 부정하는 단서가 될 수는 없고 일관성 있는 설계가 아니라 변덕성으로 이해할 수 있을만한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논리적으로는 하나의 가능성은 될 수 있습니다. 거기엔 전제조건이 따릅니다. 신도 과학의 테두리안에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전지전능한 신이고 창세기에 묘사된 그 신이 진정 존재하는 게 맞다면 그리고 있으라 했더니 있었다면, 모든 진화과정과 우주형성의 과정을 뛰어넘은 상태에서 우주와 생명이 생겨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엔 우리가 신을 과학의 테두리 안에 둘 것인가, 과학도 신의 피조물인가 하는 두 가지의 문제 중 하나를 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 profile
    ooduboy 2014.03.13 15:41

    역사와 상관 없는 신이라면 가능하겠지요.

    능력에 걸맞는 일관성도 없는 신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신이라면 우리가 그 신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 profile
    쿠마센세 2014.03.14 07:02
    일관성이라는 것은 결국 신의 의도에 달려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 만으로는 그것을 짐작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는 신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알려준 만큼만 알겠지요. 알려준 것 외에는 우리가 알 방도가 과연 있을까 싶네요.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있다면 초월적 존재라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구요.
  • profile
    ooduboy 2014.03.14 09:27
    실패의 역사를 실패라 하는 것은 단순하고 정직한 작업입니다. 그 작업을 통해 신을 모두 이해했다고 주장하지도 않구요.
    신이 역사를 통해 우리와 소통하길 원하는 것이 맞다면 우리는 그 역사를 돌아 보며 신의 성향을 짐작해 보는 것이 가능해야 합니다.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신의 성향과 의도를 짐작해 볼 수 있듯이 말입니다.
    생명의 역사에 해당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 대량멸종의 반복으로 채워져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신의 전지전능함을 유추해 내려 하기 보다는 제한적인 능력을 지닌 신을 유추해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위의 파스칼님의 댓글처럼 이러한 시도가 현상적인 모순 너머의 깊은 의도를 살피는 것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건 우리에게 신의 전지전능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량멸종에 버금가는 또 다른 대단한 근거들이 있어야 가능한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시도는 술은 먹었으나 음주 운전은 안 했다는 억지에 가까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음주운전 했다는 걸 인정하는 건 깔끔하 포기가 아니라 그냥 정직한 겁니다.
  • profile
    파스칼 2014.03.14 11:17

    ooduboy님, 최소한 우리가 지금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가 창조한 세계의 역사적 흔적을 살펴보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세계의 구조와 설계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우리의 지성과 이해수준을 압도하는 존재임에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 우주에 관찰되는 어떤 현상에 대해, 우리가 예상하는 바가 관찰되지 않는다고 할때 우리가 그 현상을 신과 연관지어 해석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요. 대체로 신학적 변증이 취해왔던 방식은, 해당 현상을 계시에 바탕한 신의 모습에 따라 호의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이었죠. 분명, 이 둘간의 건전한 대화만이 계시신학과 자연신학의 두 극단에서 우리를 구출해줄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특별히 역사적 멸종 현상에 대해, ooduboy님은 그것이 신의 능력이 모자라서 범한 실패이며, 그걸 인정하는게 정직한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ooduboy님이 그것을 '정직'한 것이라고 표현하시는 이유는, 신이라면 대멸종을 허용하지 말아야한다는 아주 강한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겠죠. 저로서는 이걸 합리적으로 납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최소한 성서의 신은 그 자신의 모종의 계획에 따라 그 정도는 충분히 허용하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행할 수도 있는 신입니다. 이건 제가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근거들을 고려해볼 때는, 멸종 현상이 신의 실패라는 ooduboy님의 주장에는 동의가 안되는 것이 제겐 더 정직한 것이고, 죄송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현상적인 모순을 즉각 실패로 귀결시키는 아주 평면적인 신 이해로 보입니다. 앞으로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같이 논의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profile
    ooduboy 2014.03.14 12:17
    제가 신을 그리 생각하는 것은 파스칼님께서 유신진화론자들의 일관적이지 못한 인식을 비판하던 이유와 비슷합니다.
    적자생존을 창조의 동력으로 사용하던 신이 느닷없이 인간에겐 이타적인 윤리를 요구하게 되는 그 모순 말입니다.

    그의 선하고 완전한 뜻과 능력 안에선 그것도 다 가능할 겁니다.

    설계를 우연으로 가장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겠구요.

    전 그런 일관성 없음을 신의 모종의 계획이란 말로 깔끔하게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 profile
    파스칼 2014.03.14 15:22

    아하, 저의 영향을 받으신거란 말씀? 감사합니다. :)
    뭐, 아무리 선하고 완전한 뜻과 능력 안에서라 한들, 말이 안되는 것은 안되는 거죠.
    그러니, 과학과 신학의 대화가 필요한거구요.

    '일관성'에 대한 ooduboy님의 견해는 저로서는 동의하기 어렵군요. 정말 이게 일관성의 문제일까요? 성서의 신은 원래부터 그의 계획에 따라 동물이나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을 계속해 왔습니다. 때로는 자기 편의 희생도 수없이 감수합니다. 기독교는 그 사실들을 거부하거나 또는 그 때문에 그것을 신의 능력의 부재로 인한 실패로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멸종이라고 한들 그런 신에게 모순이 될리가 만무하죠. 이건 일관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따라서, 멸종의 문제는, 그 의도와 그 너머의 다른 어떤 사건으로 향하는 것이 제게는 당연히 더 합리적이고 일관적입니다. 물론, ooduboy님의 말처럼 어떤 신의 실패일 가능성도 열어두어야겠죠.

    한편, 제가 유신신화론과 관련하여 논하고자 했던 문제는 기독교 내러티브의 주요한 두 축인, 창조 사건과 십자가 사건의 원리가 충돌한다는 거였죠. 성서의 신이 원래부터 그 계획에 따라 에 따라 적자생존과 자기희생을 원래 이랬다 저랬다 한거 였다면 이것 또한 큰 문제가 될리가 없습니다. 그보단, 왜 또 이번엔 이걸 바꾸었을까를 고민하는게 더 합리적이니까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게 문제입니다. 이것은 멸종과 같이 어떤 자연의 현상을 설명해야하는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의 중심 축 가운데 창조에서 십자가에 이르는 흐름을 일그러뜨린다는 면에서 그 자체로 내부정합성의 문제이죠. 따라서, 이거야말로, 일관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ooduboy님이라면 깔끔하게 포기하시고, 신론을 수정하는 방향으로 가실 수 있는 바로 그 문제입니다. 물론, 저는 여기에 대해서는 충분히 납득합니다.  

  • profile
    ooduboy 2014.03.14 23:59

    멸종을 포함한 창조의 과정은 신의 모종의 계획을 추측함으로서 십자가의 신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지만, 적자생존을 통한 창조의 과정은 십자가의 신과 일관성이 없다는 생각은 제가 믿음이 부족해서 이해가 전혀 안되네요.

    공의의 실현을 위해 때론 후회하면서까지 잔인한 사건들을 일으키는 신이 성경에 등장하는 시점은 성경에서 말하는 인류 타락 이후가 아니던가요.
    성경의 인류 타락의 이야기가 의미가 있다는 전제하에 공의를 위한 그의 선택은 어쨌든 그럴수도 있겠다 생각할만하죠.
    그러나 대량멸종의 사건들은 주로 성경의 신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며 창조의 과정을 흡족하게 보던 때에 일어난 것일텐데요.

    십자가의 사건을 만물의 회복을 위한 우주적인 사건으로 만든 그 신이 인류 타락 이전에 만물을 망쳐버린 그 신이란 것인데...
    이거야말로 ㅂㅌ...

  • profile
    파스칼 2014.03.15 10:40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너무 문자적으로 이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ooduboy님께는 멸종이 계속 대단한 신의 실패로 다가오시는가 보네요. 창세기의 창조기사가 생명체의 생물학적 죽음도 없고 아무 위험도 없는 창조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주로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의 입장입니다. 이건, 이 세계의 물리적 구조로 볼때 개연성이 없는 주장 일뿐더러, 창세기 기사에 내용만 가지고 보더라도 지지하기 어려운 입장이예요. 이미 창세기는 먹이사슬을 가진 생태계의 탄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담와 이브가 죄를 짓고 추방되는 에덴의 바깥은 또 왜 존재하는 곳이었고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야기하자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창세기의 신이 '보기에 좋았다'는 것은 ooduboy님의 해석하듯이 생물학적 죽음이라곤 전혀 없는 어떤 완벽한(?) 세계였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러니 인류의 타락 전에 멸종이 존재했다고 해서 신이 뭔가를 망쳐버렸다고 해석하는 것도 성립이 안됩니다. 아시다시피, 성서는 문학적이고 신화적인 요소를 지닌 작품이고 특히 창세기는 더욱 그러합니다. 분명, 한시적인 생명들이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이 생태계의 이 균형적 구조는 그야말로 아릅답습니다. 그 바탕 위에 신은 인간의 자리를 마련해두었겠죠. 그것에서 '좋다'를 연발하는 신의 모습에 저는 공감하지 못할 이유가 없군요.

  • profile
    ooduboy 2014.03.15 23:25
    생명의 죽음 없는 세계가 이 지구의 조건에서 당연히 가능할리 없죠. 그러한 생태계를 지구의 한정적인 자원으로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저는 먹이사슬로 이루어진 생태계를 신의 실패라 하지 않았습니다.
    먹이사슬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인정했으니 그 생태계의 결과물을 거의 없애버리는 대멸종의 죽음도 같이 인정하는 것이 일관성 있는 것이라 생각하시는 듯 합니다.
    저는 '조화'를 어떻게 받아들이시기에 그러한 도약이 가능한지 의문입니다.
    먹이사슬이라는 죽음과 잔인함이 도사린 이 자연의 질서를 통해 긴장감 넘치는 조화를 발견하고 감탄하는 것엔 충분히 동의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조화롭게 유지되는 생태계 전체가 위태해지는 대량멸종의 사건에서도 조화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제가 신에게 매우 호의적이지만 전혀 동의하기 힘듭니다.
    계속 말씀 드리는 일관성의 문제입니다!
    물론 더욱 거시적인 관점에선 이전 세대의 생물들이 다음 세대의 생물들에게 생태적 지위를 물려 주기 위한 아주 손쉬운 방법이라 생각해 볼 수도 있겠군요.
    신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너무 크기가 커 버려서 포유류가 살 공간을 남겨 두지 않은 공룡이 잘못한거죠.

    파스칼님이 생각하는 조화로운 세계는 '조화'라는 개념 자체의 일관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 profile
    파스칼 2014.03.16 01:24

    대량 멸종을 허용하는게 '조화'롭는 말이 아닙니다. 그걸 신의 실패로 귀결 시킬만한 근거가 너무 약하다는 겁니다. 이걸 생각해보세요. 이 세계의 역사는 성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수많은 사건들로 가득차 있어요. 우주의 초기와 인간의 탄생까지, 그 물리적인 시간은 130억년이 넘어요. 그런데, 이 역사를 다룬 것은 1200여장의 성서에서 고작 몇장에 불과합니다. 이 정보의 불균형은 엄청납니다. 자, 그리고, 최소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ooduboy님도 동의했듯이, 신이 이 창조의 초기부터 세계에 죽음을 이미 허락했고, 그 이후에도 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그의 계획에 따라 생명체를 대량으로 제거하는 주권을 행사해왔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서술되지 않은 130억년의 그 긴 시간동안에, 성서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지는 않았다 한들, 모종의 사건과 그의 계획에 따라서 그가 생태계의 역사에 또다른 형태의 어떤 대량의 죽음을 허용했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닌가요? 아니면, ooduboy님의 말처럼 이게 도무지 일관성이 없고 그래서 신이 능력이 부족해서 실패한 걸로 봐야 한다는 결론으로 가는게 더 타당한 건가요? 전 이걸 묻고 있는 겁니다. 제가 신이라면 좀 억울할 것 같아서, 변호 좀 해 봅니다.

  • profile
    ooduboy 2014.03.16 10:33
    말씀드렸다시피 죽음의 허용으로부터 대량멸종의 정당성을 연결하는 것은 신의 성향에 대한 일관성의 근거가 부족한 도약으로 보입니다.
    그 근거가 정보의 불균형, 즉, 모종의 신비에 기댄 것인듯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역사의 정보가 주어져도 신은 어차피 그보다 클 것이므로 우리가 신을 이해해보려고 하는 노력들이 가능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모든 것은 신의 선한 의도와 능력 안에 속한 것이라고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일테니까요.

    신은 제게 변명할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가 나를 존재하게 하기 위해 아픈 역사의 모험을 마다하지 않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으니까요.
  • profile
    파스칼 2014.03.16 21:34

    이건 이 정도쯤 해두는게 좋겠네요. 신이 실패했지만 변명할 필요도 없고 감사의 마음으로 다 받아주겠다고까지 하시니 딱히 더 논쟁할 거리도 아니겠구요. 재밌었어요, 또 이야기합시다.

  • profile
    ooduboy 2014.03.16 23:46
    인류의 창조를 후회하며 심판의 의미로 세계를 와해시켰던 신과, 인류 이전의 시대에 뭐가 그리 후회스러운 일이 있었는지 애써 만든 세계를 와해시킨 신을 모종의 계획과 신비로 화해시키려는 시도는 제 생각과 평행선을 달릴수 밖에 없군요.
    뭐, 어쩌겠습니까. 모든게 다 가능하다고 하니 더 논쟁할 수가 없네요.^^
    다음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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