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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클럽

해결된 질문

사랑과 관련하여서

고수길 2014.03.12 03:22 Given Points 0
추천 수 ( 0 )


보통 기독교 안에서 아가페-필리아-에로스 사랑을 말하곤 합니다.


아가페는 하나님 사랑-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하고


필리아는 우정-우애를 뜻하며


에로스는 성적인 사랑 조건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그리고 보통 기독교 윤리학에서 아가페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에로스 사랑을 깍아 내리곤 합니다. 


그런데 제가 플라톤의 <향연>을 읽다보니 에로스 사랑이 마냥 조건적인 사랑으로 표현되리라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조건적이거나 무조건적인 것이 기준이되기 보다 에로스 안에서도 무조건적 사랑이 가능하며, 필리아나 아가페도 동일하다고 여겨집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21장에서 나오는 아가페-필리아 문답에 대해서도 요한저자가 아가페와 필리아는 구별해서 쓰지 않는 걸로 확인됩니다. 


기독교 안에서 사랑이 조건-무조건적으로 기준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요. 아가페와 에로스는 그저 사랑의 표현이라고 보는데.


아가페가 무조건적인 사랑-에로스는 조건적인 사랑 혹은 세상의 사랑으로 표현되게 된 근거나 계기를 알 수 있는 책이나 논문 혹은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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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1)

좋습니다 2014.03.17 17:21
질문자로부터 선택받은 답변입니다

성서대 신약학 이민규 교수님의 글로 답변이 어느정도 될 것 같습니다.


-이하 전문

아가페는 과연 진짜 신적 사랑을 의미할까요? 필로스는 인간적인 사랑이고요? 많은 기독교인이 사랑을 셋으로 나누어 이야기합니다. 에로스는 에로틱한 육체적 사랑, 필로스는 우정과 같은 사람들의 사랑, 그리고 아가페는 조건 없는 하나님만의 신적인 사랑이라고요. 에로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의 신인 큐피드를 지칭하는 말로 남녀 간의 성적 사랑을 주로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만, 플라톤은 철학적으로 이데아(본질)를 갈망하는 마음 상태를 에로스라 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명사로 아가페와 필로스, 혹은 동사형인 아가파오와 필레오에 대하여 그런 구분은 불가능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고 백과사전에도 그렇게 나온다고요. 맞습니다! 오늘날은 너무나 널리 퍼져 당연시되는 사실이지만 사실 예수님 당시의 상황에도 그랬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편견입니다.

아가페가 신적 사랑이 아닌 예들

이는 로버트 졸리의 발표 이후 신약학계의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Robert Joly, 1968). 사실 많은 학자를 통해 그간 밝혀진 모든 그리스 문헌, 그리고 구약의 헬라어 번역인 70인 역, 신약,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도 그러한 구분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Robert Joly, James Barr, C. F. D. Moule 등). 물론 아가페와 필로스가 동의어는 아니라도 어디에서도 결코 한 단어가 더 높은 사랑이나 낮은 차원의 사랑을 의미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 오늘날 널리 퍼져 있는 아가페가 신적인 사랑을 의미한다는 믿음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요? 저도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먼저 모든 헬라 문헌에서 필로스와 아가페는 동사 명사 할 것 없이 남녀 간의 사랑, 인간적인 사랑, 신적인 사랑 등 보편적으로 우리말에서 사랑이란 표현을 쓸 때와 비슷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우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성경에서 그 대표적인 예를 찾아볼까요?

구약의 헬라어 번역인 70인 역 창세기에서 야곱이 요셉을 사랑한다고 할 때 아가페의 동사형이 사용되었습니다. 헬라어를 모르시는 독자들을 위해 특정 단어만 헬라어로 비교하고 어렵고 복잡한 문법 설명을 최소화하여 동사형도 대체로 명사형인 아가페/필로스로 표시하면서 개역 성경에서 인용해 보겠습니다.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아가페) 그를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
4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필로스)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창 37:3~4).

보시다시피 여기에서 아가페와 필로스는 구분이 없습니다. 같은 단어를 반복하지 않는 문학적 스타일에 따라 아가페와 필로스의 동사가 교차하여 사용된 것이랍니다.

더 극단적인 경우는 다윗의 아들 암논이 그의 이복 누이를 연애하여 성폭행하였을 때에도 아가페 동사가 사용된 것입니다.

15 그리하고 암논이 저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이왕 연애하던 연애(아가페가 두 번 반복)보다 더한지라 곧 저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삼하 13:15).

요한복음에서도 아가페 동사가 인간적인 사랑을 의미한 곳이 있습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아가페)이니라(요 3:19).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아가페)(요 12:43).

디모데후서에서도 아가페는 세상을 향한 사랑의 문맥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아가페) 나를 버리고(딤후 4:10).

베드로후서에서는 부정한 소득을 사랑하는 것에도 아가페 동사가 사용되었습니다.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아가페)(벧후 2:15).

또한, 필로스 동사가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을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했지요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필로스)(요 16:27).

사람들이 어둠을 사랑한다고 할 때(아가페), 세상을 사랑한다고 할 때(아가페), 부정한 소득을 사랑한다고 할 때(아가페), 이것이 신적인 사랑을 의미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또한,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필로스) 인간적인 사랑일 수는 없지 않나요? 4세기 이후에는 필로스/필레오는 대부분 '키스/키스하다'의 의미로만 사용됩니다. 신약에서도 유다가 예수에게 키스했을 때 필로스의 동사형이 사용된 적이 있지요.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아가페/아가파오가 4세기부터 사랑에 대한 표준 명사/동사가 되는 획기적인 변화를 보입니다. 그리고 필로스에서 사랑의 의미는 점차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아가페와 필로스를 구분하여 해석하는 대표적인 잘못된 예

사실 많은 기독교인에게 아가페/필로스의 동사형을 구분하여 특별한 해석이 나온 대표적인 본문은 요한복음 21장 15~17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세 번씩이나 예수를 부인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고기를 잡던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는 아가페와 필로스의 동사가 번갈아 나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처음 두 번을 신적인 헌신과 사랑을 의미하는 아가파오를 사용하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러나 인간적인 사랑, 즉 필레오로 "내가 주를 사랑하니이다"고 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인 마지막에서야 필레오, 즉 인간적인 수준으로 사랑하느냐로 물으셨는데 그때에 베드로 역시 같이 필레오로 답했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나를 조건 없이 신적으로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을 때도, 베드로는 솔직하게 인간적인 수준으로만 사랑한다고 세 번 답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혀 근거 없는 해석입니다. 또한, 이러한 해석의 또 다른 문제는 실제로 예수님이 베드로와 대화할 때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람어에는 이러한 구분이 없다는 점입니다.

사실 요한복음이 쓰일 당시만 해도 사랑의 의미로 아가페의 사용이 늘어나고 필로스는 점차 사라져 가는 추세였습니다. 그럼 요한복음은 왜 아가파오와 필레오를 바꾸어 가며 사용할까요? 어떤 이들은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지루함을 벗어나기 위한 문학적 스타일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본문에서 어린 양(lamb), 양(sheep)의 구별을 보기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는 이것이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한 질문이 15장 19절, 16장 27절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맥이 뜻을 결정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아가페라는 단어 자체가 신적인 완전한 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하지 아가페라는 단어 자체가 완전한 사랑, 헌신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어에 대한 잘못된 남용을 피해야 합니다. 단어의 뜻은 원래 고정된 것이 아니라 문맥이 결정합니다. 의미론적 범주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어떤 단어가 어떤 의미들이 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말에도 사랑 혹은 사랑하다라는 표현이 얼마나 많은 뜻을 지니나요? 하나님의 사랑, 부모의 사랑, 형제 간의 사랑, 남녀 간의 사랑, 성적인 사랑, 음악에 대한 사랑 등이 있지요. 사랑의 의미는 원래 정해진 것이 아니라 문맥에 따라 결정되지요. 때에 따라서 '사랑한다'는 '좋아하다'와 같은 의미이기도 하고 다른 문맥에서는 그 의미가 '귀중히 여기다', '아끼고 보살피다', '성적으로 끌리다' 등 다양합니다. 여기서 그 뜻과 동의어는 문맥이 정한다는 말이지요. 또 다른 예를 들어 말하자면 우리말의 '시원하다'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물리적인 차원에서 '아침 공기가 시원하다'의 뜻과 '속이 시원하다'의 뜻은 다릅니다. 앞에 있는 것은 온도가 상쾌하다는 의미로, '시원하다'는 것과 '상쾌하다'는 다른 용어지만, 사람의 기분에 관한 문맥에서 같은 뜻입니다.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시원하다'고 할 때 그 의미는 온도에 관한 공기가 시원하다는 것과도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뜨거워서 속이 풀린다는 말이지요.

이처럼 우리는 문헌을 볼 때 단어의 의미를 정해 놓고 본문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문맥에서 결정되는 의미를 찾아내야 합니다. 언어는 수학적인 공식처럼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단어는 수학적 기호의 성격을 너머서 있습니다. 아가페가 신적 사랑, 필로스는 인간적인 사랑이란 말은 신약성경에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가페가 필로스와 아주 같다는 말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가페가 복수로 사용되어 애찬식을 가리킬 때 필로스가 이런 경우로 사용된 적은 없습니다(유 1:12). 그러나 성경에서 아가페의 의미는 문맥이 정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아가페가 완전한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한 것입니다.

이민규 / 한국성서대학교 신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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